본내용
1. 장로교회사
1.1. 초대교회와 장로정치
초대교회에서는 장로정치 형태가 나타났다. 교회는 모세 때부터 존재하였으며 이를 "광야 교회"라고 불렀는데, 이 교회는 신약교회의 모형이었다. 구약시대의 교회정치 사상은 신약시대 교회정치의 모델이 되었다.
장로정치의 구약적 배경은 족장 정치에서 발전한 것으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끄는 정치체계였다. 구약교회의 장로는 성전 사역이나 성막 봉사, 제사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회중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였다. 구약교회는 회중으로부터 권위가 나오고 평등과 자율을 실시하는 상향적 장로정치를 유지하였다.
신약성경은 인간이나 교회회의가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교회 직분자의 종류, 자질과 의무를 규정하셨고, 성령을 통해 각자에게 부르심과 은사를 주셨다. 따라서 교회가 교회답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성경적 기준에 따라 직분자를 세우고 그들이 성경적 사역 원리에 따라 교회를 다스려야 한다. 이것이 장로정치 사상의 성경적 배경이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설교, 성경봉독, 찬송, 성례 등으로 구성되었고, 예수를 하나님으로 높여 찬송하였다. 또한 안식 후 첫날을 주의 날로 지켰다.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은 매우 단순했지만, 교부들은 감독 중심의 교회 정치로 변질되어 갔다. 이처럼 초대교회의 상호 평등, 지역 교회의 자율성, 교회적 연합을 특징으로 하는 장로정치 형태가 변화되어 갔다.
1.2. 중세시대의 장로교회
중세 시대에는 교회의 박해로 인해 교회가 분열하기 시작했으며 무질서와 혼란 가운데 빠졌다. 그리고 이단 운동이 일어났다. 감독 중심 사상이 등장하였는데, 감독직의 우위성이 거론되기 시작하였고 장로회의 안에서 직책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감독중심의 교회 정치 체제는 사제주의 신학과 결합하면서 막강한 힘을 가진 교황 통치 시대를 열게 되었다.
로마천주교회는 예수께서 베드로를 모든 사도들 위에 세워 수제자로 삼아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웠고 그에게 천국 열쇠를 맡겼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베드로를 계승하는 교황이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고 교황이 땅에서 무엇이든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근거로 로마교회의 우위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성경이나 역사에 의해 입증될 수 없는 낭설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또한 테르툴리아누스와 오리게네스는 교회가 세워질 반석이라고 불렸고 하늘 열쇠가 베드로에게 숨겨진 것이기 때문에 로마 감독의 베드로 계승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오스카 쿨만에 의해 낭설임이 주장되었는데, 로마 교회는 베드로가 로마에 도착하기 오래 전 오순절 강림 때에 은혜를 받은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돌아와서 세웠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콘스탄티노플 교회가 신학적으로 약하였기 때문에 로마교회는 서방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거짓 문서들을 만들어내면서 더욱 자신들의 지위를 확립하기 시작한다. 때로는 프랑크 왕국과 상부상조를 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이런 교권은 그레고리 7세 때 절정을 이루게 된다.
스콜라 신학자들은 인위적인 전통을 강조하는 신학을 만들어내어 교황정치의 타락을 가속화시켰다. 그들은 성경이 아닌 이성에 기초하여 신학을 연구함으로 신학의 변질을 가져왔다. 이로써 이성적 신학은 중세 신학의 근간이 되었으며, 이러한 사상의 기초를 제공한 자가 롬바르드이다. 롬바르드는 주교직을 일반 사제들로부터 구별하였으며, 교황의 특별성을 주장하였다. 그렇게 교황권의 강화는 점점 이루어질수록 더욱 교회의 타락을 가져왔다.
12세기 피터 왈도의 주도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개혁 운동이 일어났다. 왈도는 성경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보급하고자 하였고, 성경만이 오류가 없는 유일한 규범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에 근거하여 만들어낸 자신들의 신앙고백서에서 교황정치와 로마교회의 교리를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회중의 영적인 상태를 부지런히 살피고 목사를 도와서 교회를 섬겼으며 오류를 책망하는 내용들의 설교를 하였다. 이런 왈도파의 사상은 로마천주교회의 주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교회회의 운동은 교황정치가 그리스도가 아닌 역사에 의하여 자라온 산물이라고 주장하여 교황권의 신적 기원을 부인하였다. 옥캄은 대화록을 통해서 교황은 인간으로 이단에 빠질 수 있는 연약성을 가진 존재이며, 교인 총회 또는 교회회의는 이단에 빠진 교황을 폐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결국 1417년 교황청이 하나가 됨으로 바벨론 포로 시기의 끝으로 말할 수 있다.
1.3. 종교개혁과 장로정치
장로교회사의 이러한 흐름 속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장로교회사의 흐름에 큰 족적을 남긴 주요 인물로는 마틴 루터, 츠빙글리, 칼빈 등이 있다.
마틴 루터는 1520년 '교회의 바벨론 포로 시대'를 출판하며 로마천주교회의 일곱 가지 성례에 대해 비판하고, 예수께서 세우신 성례는 성찬과 세례의 두 가지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모든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주장하며 만인제사장주의를 내세웠다. 루터의 사상은 후대 종교개혁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교회를 지배해야 한다는 '오직 성경' 사상, 만인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며 제사장이라는 '만인제사장주의', 그리고 하나님이 교회 질서 유지를 위해 교직자 제도를 세우셨다는 사상 등은 장로교회 정치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츠빙글리와 불링거도 장로교 정치 사상의 기초를 놓은 인물들이다. 츠빙글리는 출교권이 세속 정부의 관할 아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장로정치를 강조하였고, 불링거는 교직자 간 평등을 강조하며 교회의 자율성을 주장하였다.
한편 칼빈은 성경에 근거한 철저한 교회 개혁을 추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