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없는개발

서장

세계 각국의 인구, 국내총생산, 1인당 국내총생산 등에 관한 역사적 통계로 유명한 메디슨의 데이터를 보면 1950년의 한국의 1인당 국내 총생산은 770달러로 자료에 나오는 145개국 중에서 106번째였다. 일제시대의 근대적 경제성장을 봐도 1932~37년의 5년간에 한정된다. 근대적 경제성장의 본격적 전개는 1960년대 이후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제시대에 이루어진 개발과 성장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일제시대의 개발에 관한 본격적 탐구에 앞서 우선 지금까지 나온 일제시대의 개발에 대한 여러 견해들을 검토해보자.
오랫동안 일제시대 한국사는 침략, 수탈, 저항 등의 키워드로 뒤덮여왔다. 이러한 역사관에 대한 맞바람으로 피티가 ‘개발과 수탈’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기하면서 ‘개발’이라는 측면이 새롭게 부각되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다. 국내에서도 ‘식민지 근대화론’이라고 불리는 일부 경제사 연구 그룹이 출현하여 비슷한 연구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이들은 조선 후기 이래 현재에 이르는 장기간의 한국경제의 동태의 일부로서 일제시대의 한국경제를 연구하는 성장사학의 연구방법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개발의 측면을 강조’하는 개발론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연구는 근본적으로는 다르지만, 많은 점에서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그 공통점을 살펴보면 첫째, 이들 연구는 일제의 조선에 대한 침략이나 수탈을 비판하고 있다. 둘째 ‘수탈론’과는 달리 개발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해방 직후에 나온 책에서 이기수는 “과거 40년간의 경제사는 착취당한 기록인 동시에, 조선에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발전되고 조선사회가 비록 식민지의 입장으로 나마 근대화해온 과정”이라고 하여, 일제 지배가 조선경제를 자본주의화 혹은 근대화하는 역할을 한 점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수탈론에서는 개발의 측면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다루거나 혹은 왜곡된 것으로 간단히 상정했고, 초점은 일관되게 수탈에 맞추어져 있었다. 셋째, 대부분 식민지 조선을 하나의 독립된 경제단위로 의제하여 분석하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민족문제나 계급문제왿� 같은 것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국민소득, 무역, 산업구조, 금융, 경제성장 등 주로 조선 전체에 대한 거시 경제적 분석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