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DC 12 인권과 국제기구

스스로를 ‘인간’으로 자각하는 이상 인권을 옹호하고 그 가치를 역설하는 주장은 실로 매력적이다. 人이라는 객관적이고 중립화된 권리의 주체를 我로 치환할 때 이는 곧 나의 권리이며 주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동아시아 중상주의 발전국가왿� 분단국가라는 나를 둘러싼 배경으로 인해 과연 인권은 지상의 가치이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견지해야 할 주장인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있다. 1960~80년대의 개발 독재 시기의 정권은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기에 그 과실은 외면해도 되는 것인지? 재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 속에서 인간의 정주·거주 권리는 무시할 수 있는 것인지? 체제의 안보를 위해서라면 인간의 사상을 국가가 억압 내지 통제할 수 있는 것인지? 요컨대 오늘날의 한국은 본문에서 제시된 문화 상대주의왿� 인권 보편주의의 갈등 속에서 전자의 입장에 가까운 쪽이라는 것이 인권의 주체로서의 내가 가지는 인식이다.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권의 역사는 그리 길다고 할 수 없고, 발전된 인권 상황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서구 국가들 역시 대외적으로는 인권에 대해 선택적이며 가변적인 입장을 보인 경우가 많다. 이에 한국의 인권 상황은 과연 발전의 선상에서 초창기 지점에 위치한 것인지, 아니면 문화적 상대주의의 공고한 기반 위에서 서구에서 제시하는 것과는 상이한 내용의 독자적인 인권 개념을 정립해 나가게 될 것인지, 앞으로가 궁금한 부분이다. 국제적 차원의 인권 역사에 있어서 유엔의 발전은 인권의 증진과 궤를 같이 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그 시작은 2차 대전의 참상과 제국주의적 식민 시기의 잔혹한 인간 군상의 자극이 가져다주는 반성에서 시작된 수동적 반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의 유엔 활동은 단지 국가들이 허여한 범위왿� 권능을 넘어 스스로 인권의 새로운 영역을 발굴하고 의제를 설정하며 행동을 취하는, 상당히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인권의 보호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국가들로 이루어졌다는 ‘국제’사회에서도 개인의 발견이 이루어진 셈인데, 이제 그 동력은 쉽사리 꺾이기 힘든 궤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