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서평

역사소설이란 무엇인가?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고 과거에 ‘일어난’ 일을 다루지만, 소설은 허구를 서술하고 ‘있을 수 있는’ 세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역사는 민족이나 집단의 운명을 추적하고, 소설은 가공인물 개인의 운명을 추적한다. 이러한 역사왿� 소설의 보편적 특성을 살려 역사소설을 정의해 보면, 그것은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상상력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다. 시련과 고난의 역사를 경험한 러시아인들에게 역사는 무엇보다도 개인의 의지로 좌우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었으며, 따라서 민족적 차원에서건 개인적 차원에서건 그것은 인간의 삶을 제약하는 불가항력적인 힘이었다. 레오 톨스토이(1828~1910)는 서사시 전통을 계승한 작가로서 러시아의 역사를 <전쟁과 평화>라는 방대한 소설에 담아내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역사의식과 인간의 다양한 삶이 어우러진 러시아 최대의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과 평화>는 1805년 제1차 나폴레옹 전쟁 직전부터 1812년 조국전쟁을 거쳐 1820년까지 15년에 걸친 시기를 재현한 것이다. 러시아인들에게 잊혀 지지 않는 조국전쟁 당시 보로디노 벌판의 대전투,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점령 후에 일어난 대화재, 프랑스군의 후퇴 등이 이 작품이 다룬 역사적 사건이다. 이를 배경으로 하여, 작가 모친의 볼콘스키 가문과 부친의 로스토프 가문을 축으로 러시아인들의 생활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작품은 그 당시의 모든 사회계층, 즉 귀족에서 평민에 이르는 모든 러시아인들의 삶을 펼쳐 보이면서 살아 숨쉬는 역사의 현장에서 민중들이 엮어가는 삶의 비밀들을 들려준다.

그러나 <전쟁과 평화>라는 소설이 단순한 역사의 기록물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심오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역사적 사건과 함께 여러 가지 집안 이야기를 다루어 다양한 인간의 운명을 보여준다. 소설로서 작품의 중심을 형성하는 것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두 가문의 구성원들이 엮어내는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이며, 주인공인 나타샤왿� 피에르의 사생활이다. 우리는 그들의 삶에서 인간의 마음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목격하고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러한 면에서 <전쟁과 평화>는 종래의 장편소설이라는 형식적인 장르개념을 깨고, 역사소설과 가정소설을 혼합하여 대하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형태를 제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톨스토이는 19세기 유럽 소설이 해내지 못한 이 성과로 소설의 영역과 지평을 확장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