깿�기택의 <소> 중 '아줌마가 된 소녀를 위하여'

시인이 나의 모교를 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라 기쁜 마음으로 찾아갔다. 한 시간 가량 강의가 시작되고 이어서 질의응답이 시작됐다. 시인은 강단에 서서 차분하게 질문을 받고 조용히 대답했다. 시인은 뭔가 단련된 고수 같은 느낌을 풍겼다. 질의응답이 끝나고 지정된 장소에서 뒤풀이가 시작됐다. 시인의 주변에 많은 학생들과 외부 참가자들이 둘러앉았다. 술을 먹고 안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시인은 자신의 학창시절을 이야기 했다. 시인은 한 때 화가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 꿈은 이루지 못 했지만 학창 시절 긴 시간 그림을 그리며 그 일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긴 시간 미술실에 앉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림을 그리면 해가 졌다고 했다. 어둑어둑한 길을 걸어서 집으로 갈 때 차오르는 충만함을 시인은 말했다. 나는 시인이 시인이 되지 않고 화가가 되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했다. 그림을 그렸어도 그는 뛰어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을 것이다. 왠지 시인은 어떤 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볼 것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신의 능력치에서 최고의 것을 뽑아낼 때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을 열정과 끈기가 있는 사람 같았다. 시인의 눈은 언젠가 끝없이 타올랐다가 이제는 까맣게 남은 숯 같았다.

< 중 략 >

나는 훗날 옛 친구를 만난다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정해두었다. 그대로다, 변한 게 없어, 아직도 젊구나… 등등의 입에 발린 말이다. 십 년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변하지 않았다니. 그건 거짓말이고, 좋게 봐도 자기 위안이다. 지나버린 세월을 어찌할 수 없으니 그냥 그 세월을 없었던 것으로 치고 우리끼리 맘껏 속이자는 자기기만이다. 자기 연민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인이 정말 변한 게 없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변한 게 없다는 말을 하지 않을 참이다. 겉모습이 어떻든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긴 세월 변하지 않았다는 말은 내게 칭찬 보다는 모욕처럼 느껴진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모욕할 마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