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라크럼 표면을 따라 부유하는 냉소적 미술

3. 시뮬라크럼 속의 냉소주의자들
3.1. 계몽된 허위의식과 그 모순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시뮬라크르로 정의할 수 있다. 시뮬라크르는 현실을 대체할 만큼 현실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재왿� 시뮬라크르를 구별하지 못한 채 그럭저럭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세계가 시뮬라시옹의 산출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몇몇 민감한 지식인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이 세계의 허구성을 폭로하며 적극적으로 실재의 복귀를 주창할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 눈감아 버리고 있을까?
슬로터다이크의 《냉소적 이성 비판》에는 알면서도 모른 척 눈감아 버리는 쪽에 속하는 현대 지식인들에 대한 진단이 있다. 시민 사회의 도래는 궁정의 상류층 사람들의 지식과 도시의 하류층 사람들의 지식이 서로 섞여 용해되게끔 했다. 페터 슬로터다이크, 이진우, 박미애 공역, 《냉소적 이성 비판》, 에코리브르, 2005, p.45
그 결과 오늘날의 냉소주의자는 고대왿�는 달리 대중적 유형으로 등장한다. 디오게네스가 괴팍하고 신랄한 개인주의자로 묘사된 반면 현대의 대중 냉소주의자는 공개 석상에서의 위험은 시도하지 않고 익명의 군중 속으로 잠적해버린다. 슬로터다이크는 이 새로운 유형의 냉소주의자를 '계몽된 허위의식 Ibid. p.47
'이라고 정의한다. 그들은 현실을 분명히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반사회적 일탈보다는 현실적으로 수준을 낮춘 집단적 관점에 집중한다. 즉 현실에서 깨어있는 계몽된 상태이기는 하나, 계몽에 대한 교훈을 실행하지 않는 혹은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기능을 떠올려보면 슬로터다이크의 계몽된 허위의식이 갖는 모순이 설명된다. 계몽된 의식은 허위의식일 수 없기 때문에 냉소주의자에 대한 정의는 모순이다. 그러나 냉소주의자의 계몽된 의식의 진행 방향과 그에 따른 이데올로기 비판의 작업과정에서 우리는 계몽된 의식 역시 허위의식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