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이론과 패러디적 패스티쉬 시

바야흐로 21세기는 패러디(parody)의 시대이다. 영화나 광고 등 각종 매체에서는 원본을 고의적으로 흉내 낸 모조품이 범람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자율성과 창조성이 없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비판의 논지는 20세기 발터 벤야민(W. Benjamin)의 아우라 이론을 근간으로 삼는다.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aura)’개념은 그가 쓴 논��에 따라 일관성 없이 등장해 지금까지도 정의의 확립에 논란이 많지만, 공통적으로는 예술작품이 지닌 원본성과 진품성, 일회성에서 얻은 권위를 통해 도출되는 가치란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벤야민의 아우라 이론에 따르면 원 텍스트의 원본성과 진품성, 일회성 모두를 훼손하는 패러디는 아우라의 몰락을 대표하는 기법이 된다. 패러디에서 분화되어 동시에 보다 다양한 작품을 짜깁기하는 기법을 의미하는 ‘패스티쉬(pastiche)’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벤야민은 아우라의 몰락을 부정적으로만 설명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예술작품에 ‘아우라가 없다’는 평가는 비난이 된다. 이 같은 가치판단은 문학에서 더욱 강조돼, 한국 현대시에서도 패러디는 주로 고전으로 대표되는 원 소재의 아우라를 빌려오는 ‘오마주(Hommage)’기법에 한해 작품성을 인정받는다. 텍스트의 부분이나 전체를 빌려왿� 변형하는 패러디는 그 비중이 클수록 원 작품을 다룰 때 보조적으로 제시될 뿐, 작품성을 인정받아 교과서에 소개되거나 시인의 대표시가 되진 못한다. 그럼 세간의 인식처럼 패러디 시는 가치가 없거나 원본에 비해 떨어지는 시라고만 봐야할까. 반드시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다. 우리는 남의 시를 빌려온 게으른 시인이라는 비판에 앞서, 오리지널 시에 비해 저평가받을 것을 알면서도 패러디 기법을 이용해 작품을 펴낸 시인의 의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패러디왿� 패스티쉬 기법은 작품성의 척도 중 하나로 인식되는 아우라를 몰락시킨다는 측면에서 가치를 지닌다. 기존 예술작품의 권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던 독자가 의도에 따라 패러디된 작품을 접하는 경험으로 기존 작품에 대해 다른 논의를 할 수 있게 된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