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한국어왿� 한국문화] 한국인의 정체성, 한_시간성과 외부성이 빚어낸 응어리짐

1. 서론
오늘날 한국의 정체성으로 ‘한(恨)’을 제시하는 것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할지 도 모른다. 실제로 1991년 당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최상진의 연구에 따르면, 응답한 대학생들 대부분 자신이 한을 경험한 적 없다고 대답하였다.1 하지만, 비슷한 시기 진행되었던 이희경의 연 구에서 81%의 대학생들은 한이 한국인의 보편적인 체험이라고 응답하였다.2 언뜻 모순되어 보이 는 두 실험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을 개별적으로는 체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한국인으로서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한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이란 무엇 인가? 한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공유되는가? 한은 현대 한국인의 정체성을 논할 때에도 여전 히 유효한 개념인가? 본 글에서는 이상의 질문에 답하면서 현대 한국인의 정체성으로서 ‘한(恨)’을 검토하고자 한다.

2. ‘한(恨)’이란 무엇인가: ‘응어리짐’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 앞서, ‘한’의 개념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서는 한을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동 아 새국어사전>에서는 ‘원통히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에센스 국어사전 >에서는 ‘원한, 뉘우침, 애석함, 후회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왿� 같이 사전적 정의를 통해서는 한이 원망, 억울함, 안타까움, 슬픔 등 여러 감정을 복합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개념임을 확인할 수 있 다. 동시에 여러 복합적인 감정의 결과로 발생한 ‘응어리짐’이야말로 한의 핵심임을 추정할 수 있 다. 실생활에서 ‘한’의 쓰임이 “못 배운 것이 한”, “나라잃은 한”, “자식잃은 한”, “결혼한 것이 한” 등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에도, ‘한’은 다양한 원인(감정)으로 유발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학계 역시 연구분야나 시각에 따라 ‘한’을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다. 시인 박재삼은 한을 ‘정체를 붙들기 어려운 정서’라고 하였고,3 최길성은 ‘영구적인 절망이 낳은 체념, 비애의 정서’라고 정의하 였으며,4 김열규는 막히고, 박히고, 맺히고, 덩어리진 것, 피에 멍 생긴 것, 멍울, 응어리라고 정의 하였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