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무늬, 스트라이프

2) 줄무늬왿�의 전쟁
그런데 왜 교황까지 나서서 줄무늬 옷을 금지시켰을까? 이처럼 줄무늬를 경멸하고, 줄무늬 옷을 입은 사람을 무작정 욕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19세기의 일부 학자들은 당시 사람들이 줄무늬 망토를 오늘날의 이슬람 세계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 줄무늬 젤라바(djellaba)로 생각했기 때문에 비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종교적 숙적이던 이슬람 교도가 입는 옷과 비슷한 망토를 기독교 성직자가 걸치고 있었으니 소동이 벌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가르멜회만이 줄무늬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것은 아니었다. 유럽에서 줄무늬 옷을 입은 사람들이나 집단은 누구나 똑같은 고통을 받았다. 즉, 성직자가 줄무늬 옷을 입었을 때뿐 만 아니라, 곡예사의 옷이나 제후의 바지, 조정대신들의 소매, 심지어 성당의 벽이나 동물의 털에서도 줄무늬가 보이면 가차 없는 비난이 쏟아졌다.
카롤링거 왕조(751~987)의 시대가 끝나갈 즈음부터 줄무늬의 차별적이 성격을 강조하는 역사적 증거들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주교회의왿� 공의회는 성직자들이 무늬 전체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옷이나 줄무늬 옷, 바둑판무늬 옷을 입지 말라는 명령을 여러 차례 내렸었다. 특히 1311년의 빈 공의회는 옷 문제를 법으로 제정하면서 과거의 명령을 모든 성직자들에게 재차 주지시켰다. 그러나 이런 법령에도 불구하고 줄무늬 옷은 성직자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반면 세속에서는 버림받거나 배척받은 사람에게 두 가지 색의 옷이나 줄무늬 옷을 강제로 입혔다. 중세 중기의 독일 관습법과 유명한 《작센슈피겔》(Sachsenspiegel, 1220년부터 1235년에 제정된 작센 지방의 법령집)에서도 사생아왿� 농노왿� 죄수는 이런 옷을 입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중세 말에 남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줄기차게 제정된 사치단속법과 옷에 관한 법령에서는 창녀, 곡예사, 어릿광대, 망나니에게 줄무늬 옷의 착용을 의무화시키고 있다. 간혹 몸에 걸치는 모든 것을 줄무늬로 입도록 의무화시키기도 했지만 대개의 경우는 어떤 식으로든 줄무늬가 있는 옷이나 액세서리를 몸에 걸치면 충분했다.
따라서 창녀는 목도리나 어깨띠나 치마에, 망나니는 바지나 두건에, 곡예사왿� 어릿광대는 웃옷이나 모자에 줄무늬를 넣어 신분을 표시했다. 말하자면 이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선량한 시민들과 혼동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시각적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줄무늬를 그들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특히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는 문둥이, 불구자, 집시에게도 줄무늬 옷을 입도록 의무화시켰을 뿐 아니라 극히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유대인을 비롯해서 기독교인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줄무늬 옷을 입도록 의무화시킨 도시도 있었다.